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어쩔수가없다 관람평, 후기, 리뷰

반응형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 영화 리뷰이다. 여유있는 정원에서의 바베큐의 장어구이에서 시작하여 정리해고, 구직 절망, 폭력의 당위화, 공간의 미장센, 배우들의 연기까지 엮어 읽을 수 있는 세가지 키워드 인간성의 몰락, 인간의 이기심, 추악함에 대한 본질을 읽을 수 있는 리뷰이다.

영화는 일견 대저택으로 보이는 한가로운 마당 바베큐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장 유만수가 비싼 장어를 굽고, 가족들은 환호한다. 장어라는 고급 식재는 축복과 성취의 냄새를 풍기지만 동시에 ‘고소한 해고의 전조’라는 끈적한 불길함을 드리운다. 미국계 사모펀드에 회사가 인수되면서 유만수에게 날아드는 해고 통보에 대한 항변에 돌아오는 대답은 “어쩔 수가 없다” 한마디에 산산조각 난다. 영화는 개인의 비극을 사회 구조의 디테일로 고정한다. 유만수의 프로필은 한국 중산층의 모범 답안에 가깝다. 안정된 직장, 번듯한 차, 아름다운 아내 미리, 재능 있는 아이들, 반려견까지 있는. 그러나 한 번의 정리해고가 이 아슬아슬한 행복을 무너뜨려 버린다. 이어지는 것은 해도해도 되지 않는 3개월의 구직 지옥과, “내 가족을 위해서”라는 슬로건 아래 폭력의 논리로 미끄러져 가는 인간성 추락의 가속도이다. 이 영화는 사건보다 자기합리화의 주문을 추적한다. ‘다 이루었다’에서 ‘어쩔 수가 없다’로 옮겨가는 그 짧은 문장 사이에, 한국 자본주의의 얼굴과 남성 정체성의 균열이 동시에 비친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리뷰
영화 어쩔수가없다 리뷰

인간성의 몰락, 생존의 언어가 도덕을 잠식하면

유만수의 추락을 촉발하는 것은 해고 그 자체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은 없다”고 스스로 결론 내리는 순간, 그는 인간으로서의 최후의 선의의 브레이크를 해체시킨다. 영화는 여기서 감상적 동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펄프 산업의 세퇴와 AI 자동화라는 시대적 맥락은 확실히 가혹하지만, 그 가혹함을 근거로 타인을 지워도 된다는 사적 정의는 그저 변명일 뿐이다. 만수는 자신과 닮은 실직자들을 경쟁자로 여기고 그들을 “제거” 대상으로 곧바로 변환한다.

이 때 반복되는 주문 “어쩔 수가 없다”는 집단적 언어가 개인 윤리를 어떻게 무기화하는지 보여준다. 이 말은 관리자들의 면책을 위한 문장이었는데, 주인공의 면죄부로 변한다. 회사의 ‘도끼’가 고용을 베어냈다면, 그는 자기 손에 쥔 도끼로 인간성을 베어낸다. 도구는 같지만 대상은 달라진다.

감독은 몰락을 외부에서만 보여주지 않는다. 촘촘히 얽힌 공간과 사운드로 내부화시킨다. 구범모(이성민)의 과시적 저택—고립, 억눌림, 비밀이 층으로 쌓인 미장센—을 만수의 동선이 침범하고 갉아먹는 동안, 조용필의 음악이 역설적 활력으로 씹힌다. 이 때 카메라는 ‘행위의 추’가 어디로 기우는지 질문만 던진다. 선한 본질을 품었던 사람이 자기 타협으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거리가 사실은 한 줌의 문장으로도 충분히 확보된다는 사실을 차갑게 제시한다.

몰락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면접이다. “적어도 한 명은 필요하지 않냐”라는 말로 자리를 꿰차는 순간, 그는 살아남는다. 하지만 살아남는 방식이 자신을 인간에서 기능으로 축소하는 방식임을 카메라는 숨기지 않는다. 조명이 꺼진 공장, 로봇이 종이를 옮기는 멸균의 리듬 속에서 터지는 그의 쾌재는 곧 값을 치른 환호로 들린다. 살아남는 데 성공했을 때, 무엇으로 살아남았는가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만이 남는다.

인간의 이기심, “가족을 위해서”라는 가장 달콤한 독

영화가 가장 날카롭게 찌르는 지점은 가족주의의 함정이다. “내 가족을 위해서”라는 구호는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거의 비판 불가능한 성역일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그 문장을 폭력의 트리거로 전복한다. 만수는 미리(손예진)의 현실적 결단—아파트 전세, 업종 전환, 외부의 도움 요청—을 ‘자신이 누리던 삶에서 멀어지는 길’로 해석하고, 도움받는 삶을 ‘굴욕’으로 받아들인다. 타인의 도움보다 타인의 제거가 더 남성답다고 굳게 믿는 순간, 가족은 더이상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명분으로 축소된다.

미리 캐릭터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는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정서적 척추이다. 상황을 읽고, 쓸 수 있는 카드를 모아 가족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이동시키려 애쓴다. 그는 보여지는 행복의 외피보다 유지 가능한 삶이 더 중요하게 본다. 그에 반해 만수는 완성된 삶의 이미지에 말려들어 실제의 관계를 잃는다. 행복의 무게가 커질수록 추락의 가속도가 커진다는 영화의 명제는, 바로 이 대조에서 힘을 얻는다.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 미리

이기심은 노골적 탐욕으로만 오지 않는다. 종종 피해자 서사의 재포장으로 온다. 만수는 “나는 착취당했다”는 정서를 방패로 삼아, 타인의 취약성을 공격하는 데 주저가 없다. 알콜 중독자, 가정이 깨진 이, 경력에서 멀어진 이들이 그의 ‘합리적 타깃’이 된다. 사회가 찍어둔 약자 표식이 폭력의 표적 스티커로 돌변하는 과정—이것이 영화가 드러내는 한국적 이기심의 가장 추한 메커니즘 이다.

해고 통보에 분노하는 유만수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언어로 유지된다. “어쩔 수가 없다”는 말, “다 가족을 위해서”라는 말, “남자는 버텨야지”라는 말이 그것이다. 말이 감정을 고정시키고, 감정이 행동을 정당화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그 문장을 오늘 당신은 어디에 썼는가?

추악함, 시스템의 얼굴과 개인의 그림자가 만나는 자리

“어쩔 수가 없다”의 추악함은 한쪽 편에만 배치되지 않는다. 시스템의 냉혹함과 개인의 일그러짐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여진다. 미국계 사모펀드의 인수, 비용 최적화, 자동화 도입, 한국식 실업 낙인의 삼각 구도는 구조적 비극의 촘촘한 배경을 만든다. 그러나 감독은 구조의 죄를 탓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배경을 악용해 인간성을 상실하고 포기하는 개인을 끝까지 추적한다.

여기에서 공간의 서사가 빛난다. 구범모자의 저택은 중년 남자의 로망이 구현된 이상적인 공간 같지만, 사실은 오만과 두려움이 층층이 숨은 취약한 상자이다. 반대로 만수의 집은 ‘진실이 폭로되는 종착역’으로 설계된다. 카메라는 공간마다 감정의 압정을 꽂아두고, 인물들이 그 압정을 밟을 때마다 표정과 호흡을 포착한다. “세트 위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 위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태도가 현재형으로 구현되는 순간들이다.

연기 역시 ‘추악함의 입체감’을 제대로 보여준다. 박희순, 이성민, 차승원 등으로 대표되는 조연 축은 각자 다른 패배의 표정을 들고 나온다. 그 표정들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룰 때, 영화는 ‘개인의 추악함’이 사실은 공유된 절망의 다른 문법임을 보여준다. 결국 가장 잔혹한 장면은 피가 튀는 장면이 아니다. 면접장에서, 그리고 불 꺼진 공장에서, 그리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움찔하는 부부의 거실에서 추악함은 조용히 확산한다. 타인을 파묻어 얻은 자리, 타인의 해고 위에 올린 가정의 평온, 자동화 라인의 정확한 리듬에 얹힌 인간의 안도,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현재를 묘사할 때, 영화는 단지 장르의 서늘함이 아니라 현실의 체온을 띤다.

경쟁자들을 없애는 방식

이 지점에서 감독은 작은 반전을 놓는다. “어쩔 수가 있었다.” 집을 팔아 아파트로 옮기고, 업종을 바꾸고, 도움을 요청하고, 시간을 벌 수 있었던 수많은 갈래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선택하지 않은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질문은 한 줄로 수렴한다. “살아남았을 때, 무엇으로 살아남았는가?”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해고·구직·가족·폭력의 서사를 통해, 인간성의 몰락, 인간의 이기심, 추악함을 서로 엮어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엿볼 수 있는 메시지는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줄이는 만큼 인간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도움을 청하는 용기, 삶의 스케일을 줄이는 결단, 타인의 실패를 표적화하지 않는 윤리, 그리고 가족을 이유로 타인을 지우지 않는 태도, 이 네 가지는 오늘 당장 실천 가능한 대안이다. 장어의 기름진 향과 도끼의 냉혹한 날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한다.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불편한 선물은, 그 선택의 순간에 들려오는 자기 목소리의 톤을 다시 듣게 만든다는 점이다. “어쩔 수가 없다” 대신, 이렇게 중얼거려 보자. “어쩔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