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세계 박물관 랭킹 4위,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완전 정복 가이드. 로제타석부터 미라, 그리고 한국관의 달항아리까지. 방대한 컬렉션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추천 동선과 무료 관람 100% 활용법을 소개합니다.
지난 시간, 미켈란젤로의 혼이 담긴 바티칸 박물관 여행은 어떠셨나요? 오늘은 시리즈의 네 번째 목적지, 영국의 심장 런던으로 날아갑니다. 바로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입니다. 사실 2025년은 대영박물관에게 조금 씁쓸한 해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프롤로그에서 전해드린 것처럼 대한민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면서 수십 년간 지켜오던 '세계 3대 박물관'의 타이틀을 내주고 4위로 내려앉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순위가 바뀌었다고 해서 이곳이 가진 가치마저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연간 600만 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찾는 이곳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의 힘과, 전 세계에서 수집(혹은 약탈이라는 논란도 있지만)한 유물들이 집대성된 거대한 보물창고입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전 지구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이기도 하죠. 오늘은 너무 넓어서 하루 만에 다 보기 불가능하다는 대영박물관을 가장 똑똑하고 알차게 즐기는 '핵심 공략법'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1. 런던의 거실, 그레이트 코트와 박물관 개관
박물관 정문을 통과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바로 '그레이트 코트(Great Court)'입니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큰 실내 광장입니다. 고풍스러운 그리스 양식의 건물 위를 덮은 3,312장의 유리 천장이 쏟아지는 자연 채광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개방감을 선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시를 보기 전에 이곳 벤치에 앉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구경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을 참 좋아합니다. 마치 '런던의 거실'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거든요.
1753년 한스 슬론 경의 기증으로 시작된 대영박물관은 소장품만 무려 800만 점에 달합니다. 그중 대중에 공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그 일각조차 제대로 보려면 며칠이 걸립니다. 게다가 '입장료 무료'라는 파격적인 정책(기획전 제외)은 런던 살인적인 물가 속에서 여행자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죠. 자, 그럼 이 방대한 미로 속에서 무엇을 먼저 봐야 할까요?

2. 놓치면 후회할 'BIG 3' 집중 공략 코스
시간이 금인 여행자를 위해 엑기스만 뽑은 추천 코스입니다. 지도를 들고 이 순서대로만 움직여도 대영박물관의 80%를 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① 이집트 문명의 열쇠: 로제타석 (Room 4) 입장하자마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을 찾으세요. 그곳에 '로제타석(Rosetta Stone)'이 있습니다. 겉보기엔 그저 글씨가 빽빽한 까만 돌덩이 같지만, 이 돌은 수천 년간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푼 열쇠입니다. 나폴레옹 원정대가 발견하고 영국이 가져온 이 유물 덕분에 우리는 피라미드의 역사를 읽을 수 있게 되었죠. 유리 진열장 너머로 보이는 3가지 언어(상형문자, 민중문자, 그리스어)의 디테일을 눈에 담아보세요.

② 그리스 예술의 정점: 엘긴 마블 / 파르테논 조각 (Room 18) 다음은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뜯어왔다는 논란의 중심, 엘긴 마블(The Elgin Marbles)'입니다. 신전의 지붕과 벽면을 장식했던 이 조각들은 그리스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살아있는 듯한 말의 근육, 여신들의 옷자락 주름 표현은 대리석이 아니라 마치 젖은 천을 덮어놓은 듯 생생합니다. 최근 그리스 정부의 반환 요구가 거세지며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유물의 아름다움과 제국주의의 그림자라는 양면성을 생각하며 관람해 보시길 권합니다.

③ 고대인의 삶과 죽음: 이집트 미라 (Room 62-63) 2층으로 올라가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 만점인 '미라(Mummies)' 전시실이 나옵니다. 보존 상태가 완벽한 미라들과 화려한 황금관, 그리고 고양이 같은 동물 미라까지 전시되어 있어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생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웅크린 자세로 자연 건조된 선사 시대의 미라 '진저(Ginger)'는 피부와 모발이 그대로 남아 있어 묘한 전율을 줍니다.

3. 숨겨진 보석: 아시리아 사자 사냥과 루이스 체스맨
'BIG 3' 외에도 제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숨은 명작이 있습니다.
1층에 위치한 '아시리아 사자 사냥(Lion Hunt Reliefs, Room 10)' 부조는 역동성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자를 사냥하는 장면을 묘사했는데, 화살을 맞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사자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긴장된 근육 묘사가 4K 영상처럼 리얼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동물 묘사 중 하나로 꼽히니 꼭 챙겨보세요. 2층의 '루이스 체스맨(Lewis Chessmen, Room 40)'은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유물입니다. 바다코끼리 상아로 만든 이 체스 말들은 억울해 보이는 표정, 놀란 표정 등 말 하나하나의 표정이 너무나 익살스럽고 귀여워 굿즈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4. 런던에서 만나는 한국의 미: 한국관 (Room 67)
대영박물관을 관람한다면 2층 가장 안쪽에 위치한 '한국관(Korea Foundation Gallery)'을 잊지 말고 방문해 주세요. 중국관이나 일본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달항아리'입니다. 화려한 채색 자기들 사이에서 오롯이 순백의 빛을 발하는 달항아리는 영국인 큐레이터들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작품입니다. 런던 한복판에서 우리 문화재를 만나는 반가움과 뭉클함을 느껴보세요. 특히 2025년에는 한국관 재개관 25주년을 맞아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어 더욱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5. 대영박물관 200% 즐기는 실전 꿀팁
- 예약은 필수: 입장료는 무료지만, 공식 홈페이지에서 방문 시간 예약은 필수입니다.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몇 주 전부터 마감되니 항공권 끊자마자 예약부터 하세요.
- 보안 검색: 가방 검사가 꽤 철저합니다. 캐리어 같은 큰 짐은 반입이 안 되거나 맡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가볍게 가시는 게 상책입니다.
- 오디오 가이드: "대한항공이 후원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한국어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기기 대여도 가능하지만, 'British Museum Audio' 앱을 다운로드하면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어폰 꼭 챙겨가세요!
- 금요일 야간 개장: 매주 금요일은 저녁 8시 30분까지 문을 엽니다. 낮보다 훨씬 한산하고 분위기 있는 박물관을 즐길 수 있는 골든타임입니다.
대영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구경하는 곳이 아닙니다.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거대한 타임캡슐과도 같죠. 비록 '세계 3위' 자리는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내주었지만, 그 방대한 지식의 깊이만큼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런던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하루쯤은 온전히 이곳에 투자해 보세요. 교과서에서만 보던 역사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테니까요.